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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비건이 되라,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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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이런 말도 있어요, 『네 아버지께 기도할 때 네 골방이나 벽장에 들어가 은밀한 중에 기도하라; 그리하면‍ 은밀하게 기도하는 너희를 보시는 너희 아버지가 공개적으로 갚으시리라』‍

자, 모두가 교회에 가서‍ 공개적으로 기도할 때‍ 어떻게 은밀히 기도하죠? 아마 그 방법이 아니겠죠. 네. 그건 성경과 모순되죠. 성경은 이교도들처럼‍ 큰 소리로 기도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쳐요. 맞나요? 그래요. 위선자나 이교도들처럼‍ 시끄럽게 떠들지 말고, 골방에 들어가 은밀히‍ 기도하세요. 자, 비밀은 거기에 있죠. 그런데 교회에 가서‍ 아주 큰 소리로 기도를 많이 하면 - 하나님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들어요.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우리 소원은 당연한 성취를 얻지 못하는데, 성경이 가르쳐 준 것을‍ 행하지 않기 때문이죠. 성경을 믿는다면 무엇을‍ 할지 좀 더 주의 깊게‍ 연구해야 해요. 주 예수께서‍ 하신 일을 보면,‍ 기도하러 교회에 가지 않았죠. 나는 그분이 설교하러 갈 때나 환전상을‍ 쫓아내거나 몰아내고, 제사장을 꾸짖으러 갈 때를‍ 제외하고는 교회에‍ 기도하러 갔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그분이 기도하러 성전에 갔다는 말은 듣지 못했어요. 그분은 무엇을 했나요?

매우 신뢰할 만한‍ 연구 자료와 고고학적‍ 발굴 자료에 따르면,‍ 주 예수께서는 전 세계의‍ 여러 나라 -특히 인도와‍ 티베트에 있었고- 당시 여러 학파의‍ 많은 깨달은 스승과‍ 함께 공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인도에 가서 진정으로‍ 스승들을 찾으면, 명상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을 발견할 거예요. 그들은 적어도 명상을‍ 가르쳐 줄 겁니다. 길거리에서 아무나 골라 그를 스승으로‍ 숭배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진심으로 찾아야 해요. 내가 아는 모든 스승은‍ 명상을 수행하고‍ 대부분의 유명한 티베트‍ 라마승도 명상하는데, 방식은 다를 수 있어요. 하지만 모두 명상합니다. 그래서 만약 주 예수께서 13년인가 19년간 -어쨌든 십 년 이상 그곳에 있었다면- 아마도 소위 스승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을 거예요.

어쩌면 먼저 자격이 부족한 스승들을 만났고‍ 만트라나 요가 수련, 물을 우유로 바꾸거나‍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등의 신통 같은 것들을 배웠을 거예요. 어쩌면 히말라야에서 소위 명상 스승을‍ 만나기 전에 이러한 것을‍ 배웠을 겁니다. 하지만 마침내 그분은 그들을 만났을 거예요. 그리고 그때도 그런 재주를 수행하려면‍ 일정 기간이나 잠시나마 일종의 명상 기술을 수행해야 합니다. 주 예수께선‍ 이런 사람을 만나‍ 명상한 것이 틀림없죠.

그분은 명상하는 법을‍ 배웠음에 틀림없어요.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40일 동안 쉬지 않고 광야에 은거했겠어요? 여러분은 지금 갑자기‍ 사막으로 들어가서‍ 은거할 수 있을까요? 40일 동안 혼자서요? 그건 불가능해요. 훈련받고 사전에 준비하지 않았다면요. 예를 들어 명상법을‍ 수행하는 우리는‍ 그걸 관음법문이라고‍ 부르는데 - 이는‍ 내면의 말씀, 내면 (천상의) 소리, 성경의 말씀 또는 하나님의 소리를 관하는 것인데 - 우리는 종종 7일간 선행사나 때로는‍ 한 달간 안거를 하죠. 우리에겐 아주 일상적이죠. 그러나 명상하지 않는‍ 보통 사람들은 5분도‍ 앉아 있을 수 없으며, 5일은 말할 것도 없어요. 마음이나 몸의 동요 없이 5분 동안 앉아 있으면‍ 여러분은 이미 스승이 된 거예요.

그러므로 주 예수님이 40일간 광야에 가서 명상한 것을 알게 되면, 그분이 명상법을 훈련받았다는 결론을 내리거나 그런 단서를 찾죠. 그분은 언제나 명상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것은 아마도‍ 하나님의 메시지를‍ 설교하기 위해 한‍ 마지막 안거였을 거예요. 대부분 스승은 그들이‍ 세상에 나가기 전에, 또는 십자가를 지고 싶은지‍ 아닌지를 결정하기 전에‍ 그렇게 해요. 일종의 마지막 순간이죠…‍ 아침에 알람 시계 소리가 들리면 바로‍ 일어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가야 한다는 걸 알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침대의 따뜻함을 즐기죠.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스승은 깨달음을 얻은 후 신께서 그들에게 시대의 예언자나 시대의 메시아가 될 사명을 부여한 것을 안다면, 정신적, 육체적, 심리적으로 자신을 준비하고 앞에 놓인 어려운 과업을 직시하고, 신이 그들에게 부여한 긴 길을 걷기 위해 얼마 동안 안거할 겁니다.

그러면 부처님 생애를 봐요. 부처님을 아시잖아요. 그분 역시 설법하러‍ 나가기 전에‍ 49일 또는 40일간‍ 안거를 하러 갔어요. 아마도 그들은 약간 잘못 계산했을 거예요. 그래요! 왜 40일이나 49일인지 궁금해요? 두 분은 왜 유사한 거죠? 어쩌면 주 예수님도 49일간 했을 거예요. 그러나 성경은 9를‍ 약간 둥글게 만들어‍ 0이 되게 했어요. 그래요. 가끔 우리는 너무 빨리 쓸 때 그렇게 해요. 6은 9처럼 보이고, 9는 0처럼 보이죠. 가끔 그렇게 돼요.

왜 49일일까요? 7 곱하기 7이니까요. 아시다시피‍ 많은 신비학을‍ 연구해 보면,‍ 사람들은 숫자 7을 믿죠. 심지어 하나님이 엿새 만에 세상을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쉬셨다고 하죠. 모두 합치면 7이 됩니다. 그리고 피라미드 유물이나‍ 이집트에 관한 모든 수학 자료 또한‍ 모든 걸 언급할 때 7을 말합니다. 7이 좋은 숫자, 창조적 에너지의 숫자, 모든 종류의‍ 영적 노력에서 강력하고‍ 응원하는 성공의 숫자라고 믿죠. 그렇죠? 내 영어가 맞나요?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매일 적어도 3개 언어를 말해야 해요. 그러니 이야기에서‍ 어울락어(베트남어)와 중국어가 몇 개‍ 들려도 놀라지 마세요. 그래서 부처님이 안거하러 갈 때 7일이 걸렸죠; 7을 곱하면 49가 되죠. 우리가 선행사를 할 때‍ 대부분 7일 선행사를‍ 합니다. 그것은‍ 매우 합당한 전통처럼‍ 되었기에 아무도 7일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죠.

그래서 어쩌면 주 예수께서‍ 49일간 갔을 겁니다. 아니면 전통 방식에서‍ 벗어날 거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어요. 그분은 말했죠, 『왜 9일이나 더하지? 난 충분히 했어』‍ 그냥 걸어 나갔죠. 그분은 성질이 조금 더‍ 급했습니다. 내 말은 그분이 성질이 급한 게 아니라-빨랐어요; 빠른 것과 급한 것은 달라요. 빠르고 더 활기찼고; 전통을 고수하지 않았죠. 그래서 아시겠지만, 그분은 사람들을 성전 밖으로 내쫓고 채찍으로 때렸죠. 그들을 꾸짖었어요. 이른바 메시아라는 명성에는 관심이 없었죠.

그는 해야 할 일을 했어요. 에고가 거의 없었나 봐요. 사람들의 일반적인 의견에‍ 개의치 않았어요. 그래서 어쩌면 40일째에 안거에서 걸어 나왔을 겁니다. 그분은 생각했죠, 『9일 더 있어도 다를 것은 없어. 어쨌든 깨달았어.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해. 빠를수록 좋아』‍

그러므로 부처님과 주 예수님의 안거 날짜를 갖고 논쟁하지 맙시다. 하지만 그것이 주 예수께서 이전에 명상했음을 우리가 아는 방법입니다. 아니면 명상을 어찌 알고 40일간 명상했을까요? 부처님이나 무함마드처럼요, (그분께 평화가 깃들길)‍. 무함마드의 (그분께 평화가 깃들길)‍ 생애를 알아보면,‍ 그 역시 조국과 동료 신자에게 설교하러‍ 나오기 전에 안거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래요. 모두가 같은 것을 했죠. 공교롭게도, 나도 역시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음에도‍ 같은 일을 했습니다. 내 말은, 나는 먼저 안거를 하고 나서 나갈 생각은 없었어요.

해야 할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하게 됩니다. 배고플 때 먹고 피곤하면 자는 것처럼요. 이제 내면의 평화를‍ 누리고 싶다면, 만족감이 있어야 해요. 먼저 요구했던 것‍ 즉 내면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 다른 모든 욕망을 극복할 수 있는 특별한‍ 만족감이 있어야 해요. 방금 요청한 것을 이루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아요. 그리고 우리 친구인 숙녀분이 요청한 것은‍ 요청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것이었고, 우리가 얻고 갈망해야 할 유일한 것입니다. 내면의 평화를 얻으면, 다른 모든 것을‍ 성취하기 때문이에요. 이는 또한 하나님 나라의 이름이기도 하죠.

모든 기적과‍ 모든 만족, 세속과 천국의 모든 소망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의 왕국에서 오고 우리의 영원한 조화와‍ 영원한 지혜와 전능한‍ 권능에 대한 내면의‍ 깨달음에서 옵니다. 이것을 얻지 못하면, 이 세상에서 결코 만족을‍ 찾을 수 없어요. 돈이 얼마나 많거나 지위가 얼마나 좋거나, 이 세상이 우리 발 앞에‍ 얼마나 많은 것을 주는지는 중요하지 않죠. 그래서 성경에는 이런 말도 있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영혼, 즉‍ 하나님의 왕국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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